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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바로크 음악미학: 관련주의를 통해 본 음악과 감정의 만남

by World-Wish1-Music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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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마태수난곡을 통해 바라본 바로크 음악미학 '관련주의'. 감정 표현의 정점에서 음악과 신앙, 인간 내면의 깊이를 탐구합니다.

 

 

고딕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이미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마태수난곡(Mattäus-Passion, BWV 244)*은 단순한 종교 음악을 넘어, 바로크 시대의 음악미학과 신학이 정점에서 만나는 걸작이다. 특히 이 곡은 **바로크 음악미학의 핵심 개념인 ‘관련주의(Affektlehre, 감정이론)’**를 가장 섬세하게 실현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마태수난곡 개요: 고통과 구원의 대서사시

마태수난곡은 1727년 또는 1729년, 바흐가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성 금요일 예배를 위해 작곡한 대규모 오라토리오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6~27장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총 2부 78곡으로 구성되며, 두 개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아동 합창단, 그리고 다수의 **솔리스트(복음사가, 예수, 베드로, 유다, 빌라도 등)**가 등장하는 방대한 편성을 자랑한다. 이 작품은 바흐 생전에는 주로 라이프치히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연주되었지만, 1829년 멘델스존에 의해 부활 공연되며 바흐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바로크 종교음악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jHxhlLV9xc

바흐 - 마태 수난곡 (전곡). BACH - Matthew Passion BWV 244 [Harnoncourt]

 


바로크 음악미학과 관련주의란?

**관련주의(Affektlehre)**는 바로크 시대 음악이론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음악이 특정한 **감정(affekt, affections)**을 불러일으키도록 구성되어야 한다는 이론으로, 청중의 감정 상태를 음악적으로 '조절'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바로크 작곡가들은 각 감정에 대응되는 리듬, 선율, 화성, 음향 효과 등을 연구하고 체계화하였다. 예를 들어, 고통은 느린 템포, 반음계적 하강 진행, 그리고 마이너 화성으로 표현되며, 기쁨은 빠른 템포, 장조, 상승하는 선율로 묘사된다. 바흐는 이 이론을 가장 정교하게 구현한 작곡가로, 마태수난곡은 바로 이러한 감정 표현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태수난곡의 구조와 관련주의의 실현

1.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감정의 중계자

**복음사가(테너)**의 레치타티보는 내레이터처럼 이야기를 해설하는 역할을 하지만, 단순한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바흐는 말의 억양과 문맥에 맞는 화성과 리듬을 부여함으로써 각 장면의 감정적 온도를 극대화한다. 복음사가가 예수의 체포나 베드로의 배신을 말할 때, 그의 말투는 격앙되거나 침잠하며, 듣는 이의 내면에 직접 호소한다.

2. 아리아(Aria): 신도 개인의 감정 묵상

아리아는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주의를 반영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Erbarme dich, mein Gott"(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베드로의 눈물과 회개의 감정을 담은 아리아로, 잦은 반음계 진행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적 흐름이 절망과 슬픔의 감정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이처럼 바흐는 아리아를 통해 개인의 내면 묵상과 정서를 표출하게 하며, 이는 듣는 이의 감정 이입을 유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i1zYWB7ZnE

BACH - Matthew Passion BWV 244 - 아리아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3. 합창(Chorus)과 집단 감정의 폭발

합창은 군중의 외침("Kreuzige ihn! 십자가에 못 박으라!")이나 제자들의 절망, 신도의 기도 등 다양한 집단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다. 두 합창단이 서로 대화하거나 겹치는 구조는 감정의 혼란과 고조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대위법적 구조와 리듬의 대조는 분노, 공포, 혼란과 같은 복합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4. 코랄(Choral): 신앙 고백과 감정의 정화

코랄은 당시 신도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교회 찬송가를 바탕으로 하여, 극 중 사건에 대한 신앙적 해석과 정서적 반응을 담아낸다. 바흐는 코랄 선율에 풍부한 화성 변화를 가미하여, 슬픔·기쁨·경외심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는 회중으로 하여금 곡의 극적 흐름 속에 신학적 성찰을 덧붙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nkSFKJ4rC0

바흐 - 마태 수난곡 (전곡). BACH - Matthew Passion BWV 244 [Harnoncourt]

 


음악적 상징성과 회화적 표현

바흐는 동기 반복, 반음계 진행, 느린 템포, 리듬의 긴장과 해소를 통해 극적 감정을 ‘그림처럼’ 묘사한다. 예컨대, 십자가형 장면에서는 현악기의 지속음과 장중한 리듬이 예수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며,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불협화음과 끊어진 선율이 예수의 심리적 불안과 고통을 드러낸다. 이는 **회화적 음악(tonmalerische Musik)**이라 불리며, 관련주의 이론의 실천적 응용으로도 볼 수 있다.


감상 포인트: 감정의 체험으로서의 음악

마태수난곡은 단순한 음악 감상이 아닌 **감정의 ‘체험’**을 유도한다. 감상자는 이야기의 외부자가 아닌, 사건 안으로 끌려 들어가 슬픔, 절망, 회개, 희망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는 바로 관련주의의 궁극적 목적, 즉 감정의 전달과 공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마태수난곡의 음악사적·신학적 의의

  • 개신교 교회음악의 정점으로, 신앙과 음악의 통합적 구현
  • 바로크 음악미학의 완성체로서, 감정이론의 교과서적 실현
  • 멘델스존에 의한 부활 이후 서양음악사에 지대한 영향
  • 종교적 경건함, 음악적 복합성, 인간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이 어우러진 작품

바흐 - 감정을 작곡한 음악가

마태수난곡은 바흐가 단순히 “신에게 바치는 음악”을 넘어서, 인간의 심리와 정서, 신앙과 고통, 죄책감과 구원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곡을 통해 우리는 단지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내면을 성찰하며, 신과의 관계를 묻는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바흐는 관련주의 이론을 통해 감정의 질서를 설계했고, 마태수난곡은 그 질서 안에서 인간 감정의 깊이를 가장 숭고하게 표현한 음악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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